오늘의풍경

Scenery of Today

함께 변화를 만드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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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풍에서 5년 일한 에디터는 뭘 배웠을까?

2021년, 디자인 스튜디오 오늘의풍경의 첫 번째 직원이 된지 벌써 만 5년이 지났어요. 그리고 2026년 6월, 일곱 명이 일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오늘의풍경에서 저의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배운 것을 회고해보려고 해요. 

참고하세요. 오풍에 오기 전에 저는 2013년부터 기본소득 활동가로 때로는 정책가, 연구자에 가까운 포지션으로 비영리단체와 정당, 공공기관에서 일했었습니다. 서로 다른 정체성의 공간들이지만 제게는 같은 결의 일들이었어요. 정리하자면 “글과 말로 반향을 만들어 사람들이 개입하게끔 하는 일”이었죠. (오풍에서도 이런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이야기하려고 하는 건 제 관점과 기술보다는 여기서 제가 배운 것들입니다. 아주 구체적인 기술부터 몇 가지 태도들까지 적어봤어요.

첫 번째 배움. 프로세스로 일하기

오늘의풍경에서 다종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면서 배운 건 무엇보다도, 어떤 작업이든 해내는 기술입니다. 그건 바로 “프로세스를 가지고 일하기”입니다.

시작과 과정과 끝이 있으면 할 수 있다. (이미지: https://www.mbceg.co.kr/post/97605)

혼자 일할 때는 전략과 기획, 실행을 한 덩어리의 일로 파악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역할과 작업 범위가 너무 커지면서 작업 기간 산출에 어려움을 겪고 압박감을 느끼거나, 일관되지 못한 전략과 컨셉으로 실행하기도 했다면, 오풍에서는 전략, 기획, 실행을 구분하고, 각 단계마다 필요한 ‘문서화’의 기술을 익혔어요. 사실 제대로 협업하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기술이죠. 이전에도 기획안을 쓰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 문서를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작동되지 않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오늘의풍경은 조직 전체가 ‘프로젝트 브리프’와 ‘컨셉 도출 문서’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유 타임라인을 통해 전체 프로세스를 공유한 채로 협업해요. 어떤 일이 오든 이 프로세스 위에서 함께 논의하고, 합의하고, 역할을 나눠 협업하죠. 

프로세스의 힘은 직접적으로 결과물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좋은 프로세스 없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어렵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죠. 무엇보다도 프로세스가 없으면 일정 내에 제대로 ‘되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요. 최종 결과물보다 프로세스로 일을 바라봄으로써 일이 되게 하는 기술이 오풍에서 배운 것 첫 번째 입니다.

두 번째 배움. 디자이너와 함께 작업하기

당연히 ‘디자이너와 일하는 법’에도 좀 더 능숙해지게 되었어요. 오풍 이전에는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이상의 관계로 협업할 일이 없었고, 그나마도 어떤 방식으로 피드백해야 하는 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 기획과 실행의 끝은 늘 ‘텍스트’였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텍스트’에서 해결하고 전달하려고 했어요. 사람들이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완벽한 텍스트(그런 건 물론 없습니다)를 쓰려고 지나치게 긴 시간을 들여 일하기도 했죠. 그런데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건, 디자이너의 클라이언트가 되는 것과는 무척 다른 일이었어요. 요청과 피드백이 아니라 정말로 협업하는 일이었지요.(다행이지요?) 

늘 뭔가 회의 중인 오풍즈(사진: 부미)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마침내 같은 텍스트도 시각적으로 어떻게 배치되고 구현되는 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는 걸 정말로 실감할 수 있게 되었고, 최선의 결과물은 ‘완벽한 텍스트’와 ‘완벽한 디자인’의 결합이 아니라 같은 목표를 향해 두 영역의 작업자가 함께 합의해 갈 때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래서 아주 초반에는 러프한 텍스트와 비주얼 레퍼런스 수준에서 협의를 많이 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의 시안을 적극 고치며 훨씬 서로에게 많이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일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팀에서 일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거에요.) 피드백 단계에서도, 시각적으로 보이는 것에 관한 피드백보다는, 같은 목표와 상을 공유했다는 전제 하에 전략과 의도에 기반해 피드백하게 되었고요. 결과적으로 저는 텍스트에서 힘을 좀 빼고, 시각 요소에 기대는 느낌을 배운 것 같아요. 이건 기술이나 방법이라기보다는 감과 태도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배움. 클라이언트 잡이란 이런 것

앞에서 비영리 단체나 공공기관, 정당에서 일했다고 말씀드렸었지요? 그때는 ‘맥락에 맞는 말’ ‘옳은 말’, ‘논리적인 설득’, ‘정합성’이 중요했습니다. 연구를 할 때도, ‘정답’은 없다고 해도 그래도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것을 찾아가는 게 퀄리티를 높이는 일이었죠. 하지만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에이전시의 일은 어디까지나 ‘클라이언트’에게 답이 있는 일 이었습니다. 

무조건 클라이언트에게 맞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하는 활동과 발휘하는 역량이 ‘클라이언트’가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는 의미에요. 연구라든가, 사회적 맥락에서의 의미에 집중하기보다는, 클라이언트의 페인 포인트를 이해하고, 그 과정에서 클라이언트가 보지 못하는 게 있다면 외부자의 시선으로 그것을 알려주고, 때로는 지금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개인적 직관과 창의성을 과감하게 쓰기도 하는 게 오늘의풍경에서 해온 일들의 공통점이었어요. 그러려면 결국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이 아주 중요해졌고요. 이 과정에서 제가 활동과 연구를 병행하며 익혔던 이슈 현장을 파악하기 위한 리서치 기술이 클라이언트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용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함께 깨달음. 크리에이티브 산업의 모순

오늘의풍경이 첫 번째 직원으로 주니어 디자이너 대신 저를 동료로 영입했던 건 디자인 업계의 관습인 “저연차 인력에게 낮은 인건비를 지급하여 이윤을 내며 규모를 키우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시도이기도 했습니다. “뭐가 문제인데? 왜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초기에 업계 외부자였던 저는 신인아 디자이너에게 질문하고 오늘의풍경의 일을 관찰하며 디자이너를 억압하는 기존의 문제점들을 언어화하고, 그로부터 차이를 만들기 위한 시도들을 함께 설계하는 일들을 했어요. 그런 시도들은 오늘의풍경에서 발행한 글들과 회사소개서 등에 구체적으로 담겨있으니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1. 돌보는 디자인(글: 희원)
  2. 한 명의 디자이너가 해방되려면 온 세계가 필요하다(글: 인아, 희원)

함께 깨달음. 솔직함의 리더십

2022년의 인아와 희원. . . ㄱ나니. . .? (사진: 임효진)

마지막은 오늘의풍경이라는 조직에서 좋은 구성원이 되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회사에서, 사회생활하면서 ‘지나치게 솔직하지 말라’는 조언을 많이 하는데요. 반대로 오풍에서는 솔직할 수록 조직에 대한 리더십이 적절하게 발휘되었던 것 같아요. 내가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솔직하게 말할 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조정해서 조직에도 반영시킬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할 때 문제가 해결되고, 조직 환경이 개선된 경우가 많았거든요. 감정이 상했을 때도 서로 터놓고 이야기 해서 관계가 발전되어 왔고요. 솔직함이 미덕으로 발휘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노력해서 갖춰야 할 태도도 있고, 조직이 제공해야 할 환경도 있습니다. 목록으로 정리하자면 이래요.

[구성원이 갖춰야 할 태도]

  • 자기를 잘 알기 : 나의 욕구와 불화를 인지하고 나의 특수한 맥락 위에서 표현하기 
  • 동료를 신뢰하기 : 믿고 솔직하기 이야기하기 - 믿고 액면 그대로의 말을 듣기
  • 감사하고 사과하고 용서하기 : 갈등을 수용하고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조직이 제공해야 하는 환경]

  • 신뢰할 수 있는 조직 : 나의 이야기가 왜곡되지 않고 받아들여질 것임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괜찮다는 믿음을 주는 조직
  • 필요한 변화는 실행하는 조직: 나의 솔직함이 조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경험의 축적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오늘의풍경에서도 이 모든 과정이 성숙하고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았어요.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합의에 이른 적도 없고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솔직하게 말하면 해결될 거야’라는 믿음이 배신당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풍은 내가 잘 솔직해질 수록 더 좋아지는 조직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 오풍을 마무리 짓는 과정 마저도, 제가 현재 자신의 상태와 욕구를 알아차리고, 빠르게 팀에 이야기하면서 진행되었군요!

오풍을 떠나는 이유 

에디터가 오풍에서 배운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저 개인의 이야기도 조금 더 읽어보실래요? 애초에 저는 왜 오늘의풍경에서 일하게 되었을까요? 2021년 동료되기를 제안받았을 때, 저는 그때까지 제가 익혀온 기술과 태도가 정치나 운동을 ‘위해’ 작동하는 걸 넘어서, ‘작업’ 그 자체로도 유효할지 궁금했어요. 내 기술이 언어적 작업으로서, 서비스(용역)로서도 시장에서 유효할 수 있을까?

그도 그럴 것이, 운동과 정치의 현장은 항상 시간이 부족합니다. 의사결정과 타이밍과 실행이 더 중요하죠. 퀄리티는 어느 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지만 저는 그 와중에도 기획의 퀄리티를 조금 더 챙기고 싶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역으로 ‘퀄리티’를 담보해야만 하는 작업자로서의 일 제안이 기꺼웠달까요. 그리고 실제로 오풍에서 교정 교열 업무부터 시작해 편집, UX 라이팅, 컨설팅, 브랜딩, 전략 기획 등 다양한 작업들을 하면서 다행히 유효하단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매 과정이 최선의 결과물을 향한 것이었기에 퀄리티에 집중하며 정말로, 재밌게 일했습니다. 하나 하나의 프로젝트가 모두 달랐던 것도 제게는 더 배울 게 많고 즐거운 일이었어요.

그리고 최근, 이토록 다양한 경험들을 하다보니 다시 뾰족해지는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저는 더 많은 시간을 연구와 저술 작업에 집중함으로써 “글과 말로 반향을 만들어 사람들이 개입하게 하는 일”을 이어나가보려고 합니다. 7월부터는 듣는연구소라는 곳에서 더 많은 시간 일할 예정이에요.(그 동안은 파트타임으로 병행해왔어요.) 듣는연구소는 이름 그대로 현장의 말을 잘 듣고, 필요한 곳에 잘 전달하여 변화가 일어나게끔 돕는 연구소입니다. 연구 뿐 아니라 작은 인터뷰, 교육, 성과분석, 액션리서치와 콘텐츠 작업까지 연구자적 관점이 필요한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오풍에서 전략 기획 파트의 작업을 할 때 사실 듣는연구소에서 익힌 기술들을 톡톡히 활용해오기도 했답니다. 더불어 가을에는 단독 저서로 첫 장편 에세이를 출간할 예정인데요.(출간 소식은 인스타나 트위터의 @slowcoleslaw 계정을 참고) 과연 저는 잘 되어서 오풍 멤버들에게 밥을 살 수 있을까요…? 

오풍 배움 회고 슬라이드에 기약없는 약속을 적다(사진: 채은)

자,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은 정말 좋은 분들. 복 받으실 거에요! 여러분도 저와 오풍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시길! 그럼 오풍에서의 저는 이만 여기서 안녕입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더 사랑 할만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일을 하다가 반갑게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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