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E17 후기, 북페어에서 혁명 팔아봄
2025년 서울. 11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북서울미술관에서 서울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17(이하 ‘UE17’)이 열렸다. 만약 당신이 그 곳에 왔었다면 1층 홀에 입장해 수 많은 부스들이 나란히 서있는 가운데 멀리, 저 멀리 어딘가의 현수막으로부터 영지버섯물향 같은 것을 느꼈을 수도 있다. 오늘의풍경x슈퍼스톰 부스가 벽면에 부착한 ‘혁명의 효능’ 현수막 이야기다.
오늘의풍경과 함께 부스를 연 슈퍼스톰은 올해 9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비영리단체로 오늘의풍경 멤버들이 시작해서 지금은 80여 명의 회원과 함께 하고 있다. 참고로 언리미티드 에디션은 봄에 신청을 받는다. 그러니까 UE17 참여는 슈퍼스톰을 준비하던 때부터 기획된 일이었다. 슈퍼스톰에서 사회운동과 관련된 워크숍을 하면, 오늘의풍경의 사회운동 관련 zine 시리즈인 번갯불문고로 만들어서 북페어에 나가자는 계획은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발상이었다. 과연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번갯불 문고 7호 “정치이야기 하는 법”(슈퍼스톰)과 8호 “슈퍼스톰: 책 밖으로 나온 은유”(노에미 비아세튼)이 만들어졌다. 여기에 기후잡지 “침착할 것”(하인리히 뵐 재단)과 번갯불 문고 5호 “신입 디자이너의 적정 초봉은 얼마일까?”까지 더해 슈퍼스톰x오늘의풍경 부스의 UE17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두근두근. UE17에 참여하는 우리의 목표는 상당부분 ‘슈퍼스톰 후원’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지금까지는 메일과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월1회 오프라인 워크숍이 사람들과 만나는 접점의 전부였으니까. 이번 UE17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만나 직접 슈퍼스톰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함께 우리의 운동에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 가도록 하자. 책과 현수막, 슈퍼스톰 그라운드룰 포스터와 티셔츠, 정성들인 물건들은 그 통로라는 생각으로, 가격 책정도 “일시후원”세트와 “정기후원” 세트로 설정했다. 오픈 이틀 전 인아와 효진이 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현장 세팅을 마쳤고, 마침내 14일, 영인이 부스를 오픈했다. A-44번 벽면에 붙어있던 혁명의 효능 현수막도 한 번 펄럭했다.(아님) 그리고...

물건을 고르는 분위기 속에서 후원은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너무 어려웠다. 각 품목 위에 가격표가 있는 게 나아보였다. 관심이 줄어들고 구매 빈도가 점차 드물어질 수록 조급한 마음이 들어 나는 결국 후원 요청 대신 열심히 물건을 팔았다. 희소성을 강조하기도 하고, 저렴함을 어필해보기도 했다. “저희는 따로 서점 입고 안할 거라서 여기서 밖에 사실 수 없어요.” “그건 5,000원 밖에 안해요” Stop Normalizing 이라는 캠페인 표어를 활용한 익숙말자 티셔츠는 후원 리워드였지만 그냥 3만원이라는 가격으로 안내했다. 카드 매출 내역을 들락날락 하다보니 어느새 낭독 이벤트의 시간이었다. 오풍의 은인 임효진 작가에게 부스를 맡기고, 나는 약간 어수선한 홀 안에서 번갯불문고 8호에 실린 노에미 비아세튼의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노에미는 20세기 중반 대중매체가 발전하며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의 이미지 생산이 큰 영향을 끼쳤던 정치 공론장이 이제는 어디의 누구로부터 시작되고 배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밈’ 시대에 들어선 상황을 ‘슈퍼스톰’이라는 은유(우리 단체 이름을 이 글에서 따온 것이다)로 설명하고 있었다.
“사소하고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순간들이 뉴미디어를 통해 상상 이상으로 증폭될 수 있다는 점, 그러나 동시에 바이럴은 결코 가공이 불가능하다는 점”
“과거엔 이미지들의 전쟁이었다면 이제는 이미지를 산업적 속도로 생산하고 퍼뜨리는 시스템들 사이의 전쟁”
“틱톡, 텔레그램, X와 같은 플랫폼은 엔터테인먼트의 도구나 커뮤니티 공간만이 아니라 전쟁의 인프라로도 기능” (노에미 비아세튼, 슈퍼스톰: 책 밖으로 나온 은유)
시스템 비판적인 책 내용을 낭독하며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밈 정치를 비판하면서, 결국 혁명 밈을 만들어서 나온 것 아닌가?' 사람들은 우리 부스 앞에서 혁명의 효능 현수막을 보면 많이 웃었다. 그건 아주 좋은 일이었다.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그 역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혁명의 효능은 유행하는 밈의 어법을 적용한 시각물이었고, 사람들이 피식하고 카메라를 들어 찍어갈만한 매력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이미지들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냥 각자의 사진첩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을 예정인지는 좀처럼 알기 어려웠다. 내심 찻잔 속의 폭풍일지라도 바이럴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단 걸 깨달았다. '유행하는 틱톡 챌린지를 찍어 올리는 공무원의 마음도 이와 같은 것이었을까? 이게 바이럴 대박을 바라고, 추구하는 홍보 업체들의 부추김과 뭐가 다르지?'
5분 간의 짧은 낭독을 마치고, 머리가 복잡해져 부스로 돌아오니, 은인 임효진 작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희원님! 책 꽤 팔렸어요! 역시 팔리니까 재밌다!” 그래! 무엇이 중요하랴! 나는 깊게 생각하기를 관두고, 다시 그냥 열심히 팔기 시작했다. 누군가 혁명의 효능 앞에서 웃으면 혁명을 파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다. "혁명 좋아하세요?" 그러면 대부분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혁명 5,000원 어치를 들여가셔요. 제작비 빼고 저희가 혁명하는 데 잘 쓰겠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판매함으로써, 슈퍼스톰은 후원을 받았고, 후원자들(대부분 자신이 후원했다는 사실을 모름)은 책과 티셔츠를 샀다. "신입 디자이너 초봉? 야 이 책 너무 슬프다. 근데 같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이런 말들을 들으며 거래와 후원, 연대라는 단어들 사이에 굳이 선을 긋지 않아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이미지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이미지를 산업적 속도로 생산하고 퍼뜨리는 시스템들 사이의 전쟁”이라고 노에미는 말했다. 북페어에 나간 슈퍼스톰과 오늘의풍경은 어떤 시스템으로 그 전쟁에 참전한 것일까? 우리는 DIY 식의 웹개발과, zine 만들기라는 비산업적 태도(물론 청계천 을지로의 인쇄 산업에 기댄)와 상호적 대화모임을 통해 메시지를 생산하고, 인스타그램, 트위터와 같은 SNS를 매개로 한 이미지 확산 플랫폼을 활용해 메시지를 배포하고, 북페어 시장에 책 사러 온 사람들에게 판매라는 이름의 후원을 받았다. 우리의 시스템은 선형적인 이미지 기획 시스템이나, 동시다발적인 이미지 대량 생산 시스템에 비해, 우연이 대단히 많이 개입하고, 서로 만날 일 없을 것 같은 시장과 생산자들, 독자들을 연결하는 예측 불가능하고 이상한 연결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장을 독점한 거대 테크 기업 플랫폼들의 비밀스러운 알고리즘에 대항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들을 보이코트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예측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행위자가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혁명의 효능은 살 수 없다. 왜냐면 혁명은 같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니까. 그리고 우리는 함께하는 방법을 좀 더 다채롭게 시도해 볼 필요가 있다. 북페어에 나간 건 슈퍼스톰과 오늘의풍경이니까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시도였다. 그럼 다음 번엔 우리에게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시도도 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우리와 같은 지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시도를 하고 있을까?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 이 글도 좀 더 의외의 사람들에게까지 가 닿기를 바라며. CTA(Call to Action, 웹페이지에서 이용자에게 행동을 요구하는 것)를 잊지 않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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