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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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활동가와 일한다는 것

동물권 활동가들이 무서웠다. 동물권에 대해 처음 인지하게 된 건 누군가 내가 '농담'과 함께 올린 수조 속 물살이의 영상을 보고 '니가 무슨 페미니스트냐'며 욕을 한 트윗과 치킨 사진에 마음을 눌렀다고 실망했다고 말하는 트윗을 통해서였다. 실제로 동물권 활동가를 만났을 땐 '무슨 말을 못 하겠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토론자리에서 그들을 초청한 사람이 'A작가를 통해 비건을 알게 되었어요'라는 인사말 같은 것을 건네었는데 바로 그 A작가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비질을 다니고, 도살장 앞에서 돼지와 소에게 마지막 물을 건네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도살장에서 고기를 떼와서 유통하는 집에서 자랐고, 한 때 '보신탕'집 딸이기도 했다. 할아버지네 놀러 가면 갓 잡은 닭을 먹었다. 나는 아직도 닭을 잡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니 나는 도살장에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최소한 '무슨 말을 못 하겠네'라는 생각은 '한남'이나 하는 생각이라는 인지 정도는 있었다. 그래서 불편해도 꾸역꾸역 동물권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면 '아, 나는 수백 혹은 수천만 동물의 시체 위에서 세상을 누렸구나' 인정을 해야 했다. 그럼 아빠가 정육을 하던 공간의 냄새가 떠올랐고,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분명 그 냄새는 익숙하고 아무렇지도 않는 일상이었는데도.

이런 이야기를 드러내고 하는 편은 아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동물권 활동가들이 과하다고 말할 것 같아서다.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면 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사냐고 말이다. 그러니 안 그래도 육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채소도 감정이 있어요'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피로감을 얹어주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런 내가 '동물권행동'이라는 단어가 붙은 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일한 이야기를 꺼내야 하니까 말이다.

동물권행동 카라와 처음 함께한 건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자료집(2020) 디자인이었다. 디자인 일감으로선 무척 단순한 일이었다. 주어진 원고를 잘 정리해서 인쇄물로 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런데 이 일은 큰 범주로 봤을 때 미디어 종사자로서 나의 직업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이기도 했다. 미디어에서 동물은 귀엽게 대상화되어 나타나거나 학대를 당한다는 게 이 자료집의 요지였고, 이들이 촬영 현장에서 소품처럼 다뤄진다는 실태도 담고 있었다. 이 일을 받기 전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그간 접한 동물권에 대한 글이나 말들에서 나는 항상 어딘가 부족하고, 반성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보니 내가 실수를 저지르진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물론 그런 불안감은 별로 티 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시작한 협업이 벌써 5년째 이어져오고 있다.

그건 함께 일하는 활동가들, 특히 황소와 나미 덕이 너무 컸다. 첫 협업부터 그랬다. 이 둘은 서울동물영화제를 운영하기도 해서 9-10월이 특히 바쁜데, 자기들 일이 늘어나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내가 이미지 수급을 위해 제안한 미니 캠페인을 흔쾌히 수락하고 협력해 주었다. 보고서 제작이 완료되어 납품을 보냈더니 회신으로 책 표지 도무송(모양대로 칼집을 내어 자르는 후가공) 사이로 도서관 사서 고양이인 알식의 얼굴을 담아 보내주었다. 친환경적인 후가공 방식을 고민했을 뿐이었는데, 내 작업이 마치 고양이를 위해 만든 것처럼 보였다. 내가 이 작업에 최선을 다했다는 데 의심은 없었지만, 은연중엔 동물권을 다룰 자격이 있는지 계속 망설이는 마음이 있었나 보다. 별 거 아닐지 몰라도, 그 사진은 그때의 나에게 큰 격려와 용기가 되어주었다. 나에게 카라의 황소와 나미는 애쓰지 않고 그런 종류의 격려를 건네주는 동료였다.

알식아 보고 싶다...

이후 희원이 합류한 오늘의풍경에서 '상호돌봄의 협업'을 실험하고 싶다고 하니 큰 고민 없이 알겠다고 하고, 기꺼이 2년 동안 그 실험을 함께 해준 것도 이들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함께 만든 동물출연미디어모니터링본부(동모본 https://media.ekara.org) 플랫폼은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쾌거도 있었다. SNS 플랫폼에 흩어지기 일쑤인 미디어 내 동물에 대한 우려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모인 목소리는 제작사에게 전달되었으며, 실질적 응답과 약속으로 돌아오게 했다. 응답은 기사화되었고, 미디어 내 동물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이 활동은 매년 진화를 거듭하여 2024년엔 현장의 창작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모니터링 만으로 알 수 없었던 문제들을 포착해내기도 했다. 동물을 위한다며 간편하게 창작자를 규탄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동료로 조망한다는 건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는 '미디어 출연 동물'이라는 매우 거대하고 막막한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면 될지 알아낸 참이었다.

영화, 드라마 등 사람들이 친숙한 미디어에 등장하는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 유기되고 학대받는 동물이 발생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그런 걸 일일이 따지면 어떻게 사냐'고 묻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일을 방지하는 것을 넘어 그 외양간을 부수고 소를 해방하는 방향으로 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오늘의 풍경으로서도 꼭 경험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다. 게다가 그걸 우리가 믿는 방식대로 실험하며 진행한다? 개인적으로도, 회사로서도, 황소와 나미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파트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요즘은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카라의 거버넌스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카라에 노조가 생겼다고 했을 때, 나는 카라가 더 훌륭한 단체로 거듭날 것을 기대했다. 그래서 카라 후원을 시작하기도 했다. 노조가 결성되었다는 건, 문제가 있더라도 협의체가 있다는 이야기였고, 문제가 있어도 이의제기 하지 못하는 환경보다 분명히 훨씬 더 건강한 조직이라는 뜻이었다. 이건 당연한 상식이다. 그런데 흘러가는 모양이 상식적이지 않았다. 우리와 함께하는 월례 회의 시간이 유일하게 숨통이 트인다는 말이 나오더니 안부를 물으면 눈물을 보이는 활동가도 있었다. 사측의 대응은 늘 '민주적인 시민단체'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종류의 것들이었다. 그 결과 프로젝트 예산은 크게 삭감되었다. 협업을 소개하고 관심을 카라로 연결시키고 싶어도 카라계정을 태그 할 수 없게 막아 아쉬웠다. 나는 후원회원이 되었지만 내 의견을 전달할 창구는 하나도 없었다. 경악스러운 일들은 이어졌지만 대표가 단체 해산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까지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활동가들이 얼마나 힘들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아서, 안부를 묻기도 미안한 지경에 이르렀다. 함께 일하는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프로젝트를 그 '회사'도 아니고, 그 '단체'의 대표 때문에 잃을 위기에 처할 줄은 정말 몰랐다.

활동가들이 그렇다고 업무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와중에 이들은 영화 161편, 드라마 146편 총 2594회 차를 모니터링하고 통계를 냈다. 그리고 100여 개 제작사에 공문을 보냈다. 그 과정에서 동물 촬영에 대해 고민한 현장이 늘어난 것을 확인하며 기뻐하고, 활동 아이디어가 또 쌓여만 갔다. 활동을 전개할 생각을 하면 도파민이 터진다고 했다. 모니터링 결과는 활동의 의미를 이해하고 팔로업해 준 기자를 통해 발 빠르게 기사화되었다. 영화제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흔쾌히 일이 되게 만들었던 이들의 저력은 하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이 와중에 그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카라 노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서두에 말하는 것이 있다. "비영리단체는 영리 단체와 다르다." 영리 단체는 보이콧을 통해 소비자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비영리 단체는 후원자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등, 직접 참여할 권리를 가지기 때문에 후원을 유지하고 노조 활동을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카라 노조가 알려줘서 나도 알게 된 거다.) 그 말이 다시 떠올랐고,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나는 내가 속해있더라도 견디기 힘든 집단을 계속 이탈해 왔다. 그것이 익숙한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말했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 그런 곳을 위해 일을 해야 하냐"라고. 그럼 반대로 말해 아마 황소와 나미가 떠나지 않고 점점 희망이 없어 보이는 싸움일지라도 이어나가는 건, 그들이 그들의 일(활동)을 정말로 사랑하고, 그것을 쌓아온 공간인 단체를 자기 것이라 믿기 때문은 아닐까? 이곳은 마음을 모아준 한 사람 한 사람의 후원으로 굴러가는 곳이라는, 그런 후원의 힘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그 무거운 책임감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임하고 있어서는 아닐까? 회사와는 다르게 말이다. 그리고 그건 내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과, 너무 많이 닮아있다. 그러니까 나는 최대한 있는 힘껏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 사랑하는 일을 있는 힘껏 하는 사람들을 지지해 주는 것은 나에게도 이롭다는 걸 알기 때문에. 이 긴 글을 누가 읽을지 모르겠지만, 이걸 설명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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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두 보고 싶다...

나미는 올해 모니터링 활동 회고를 업로드하며 동모본 웹사이트 이모지 효과를 무쇠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영상을 올려주었다. 그건 그냥 재미 요소로 넣은 거였는데... 그게 마치 내가 고양이들 생각해서, 고양이가 재밌으라고 만든 것처럼. 내가 그렇게 동물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인 것처럼. 왜 이런 상황에도 나를 격려하고 난리람. 당연히 나는 더 이상 동물권 활동가가 무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물권이라는 관점은 나에게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격려를 건네고, 사회변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그렇게 날 바꿔놓은 건 황소와 나미다. 사람을 바꾼다는 건 정말 유능한 활동가라는 소리다. 유능한 이들을 잃는 건 너무 큰 손실이다. 이들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래 이 일을 해야만 한다.

내 문장에서 부족한 부분은 동물권행동 카라 노동조합 계정에서 확인해 주었으면 좋겠다. 팔로우하고, 좋아요 하고, 공유하고, 한마디 정도는 좀... 해달라! 날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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